팔만대장경의 결집
멸도(滅度=돌아감)후에는 불제자들이 각각 기억하고 있는 부처님의 설법을 정리해서 성문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유교(遺敎)를 흩어지지 않게 하고 유법에 따라 교권(敎權)을 확립해야 하기 때문이며, 이것을 결집(結集)범어로 Samgiti라 합니다.
그래서 불제자들이 모여서 부처님께 들은 법문을 외워내어 교법을 완성하고 성전을 편찬하는 결집회의(結集會議)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여서 불법을 결집하는 큰 일은 한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무려 4회 내지 5ㆍ6회에 걸쳐서야 완성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1회 결집】(五百結集, 王舍城結集)
부처님의 수상제자이신 마하가섭존자(摩訶迦葉尊者)가 회의를 소집하여 5백명의 대아라한(阿羅漢=유능한 비구)들이 왕사성(王舍城)의 교외에 있는 칠엽굴
(七葉窟)에서 (또한 필발라굴) 아란(阿難) 존자는 경장을 외워내고 우바리(優婆離) 존자는 율장을 외워내어, 대중이 검토 결정해서 교단의 이름으로 편집 결정했습니다.
이것을 혹은 5백결집, 왕사성결집, 상좌부결집(上座部結集)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 글내결집, 굴외결집의 두 가지 결집설이 있는데 이것은 뒤에 상좌부(上座部)대중부로 됩니다.
【제2회 결집】(七百結集)
석존이 멸한 후 100년경 계율에 대한 이견이 생겨서 비사리성에 모여 장로 야사(耶舍)를 중심으로 율장을 보완 편찬하였는데 이때 열 가지 그릇된 법을 규정했고 여기에 율법만을 보완했다는 설과 경장도 일부 교정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제3회 결집】(午人結集)
불멸 200년(또는 300년)경에 아육왕(阿育王=Asoka)이 호법(護法)하여 (즉위 17년) 목건련제수(目建蓮帝須)존자를 상좌로 파타리불성(波陀利佛城華氏城ㆍPataliputra)에 일천 비구가 모여서 3장을 확정하였습니다.
이때는 아육왕이 불교의 독신자이므로 외도들의 의식이 궁핍해지자 불제자의 차림을 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등의 사건이 일어남으로 이를 대처하려는 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4회 결집】
불멸 4백년경(또는 불멸 6백만 년경ㆍ2세기경)가 이색가왕(迦朧色迦王=Kaniska)의 호법이래 협존자(脇尊者)와 세우(世友)보살을 법주(法)로 하여 가습미라성(迦濕彌羅城=Kasmir)에 5백비구가 모여 3장의 주석을 붙이는 제4회 결집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비바사론(大悲婆沙論)이라고 하는데 남전(南傳=小乘)에서는 이것을 의문시합니다 이밖에도 대승경전의 결집에 대한 전설이 있으나 좀더 자세한 것은 다음에 대승경의 결집조에서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